본문 바로가기

무비&시리즈 캐비닛(Movie cabinet)

[8월의 크리스마스] 영원히 잊히지 않을 사랑과 시간에 관한 이야기

반응형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죽음과 사랑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실제 마주했던 경험처럼 가슴에 남았습니다. 이제껏 처음 느껴본 낯선 기분은 영화 속 담겨 있던 여름날의 풍경과 뒤섞이며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죽음과 사랑에 대한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더욱 특별해 지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소개합니다.

 

|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사랑

2대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친구 부모님의 부고를 전해 듣고 장례식장에 다녀온 정원은 사진관 앞에서 그를 기다리는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을 보게 된다.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죽음을 체감하며 지쳐 돌아온 정원에게 다림은 사진 현상을 재촉하고, 정원은 이런 다림을 성의없이 대한다. 인화기가 돌아가는 동안 한 숨 돌린 정원은 사진관 앞 나무 밑에 서있는 다림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사과의 말을 전하고, 둘은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그늘에 서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후, 다림이 단속사진 현상을 핑계로 사진관을 자주 찾게 되면서, 둘은 조금씩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릅니다. 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삶의 변화는 저마다 다릅니다. 이 영화는 정원과 다림의 이야기를 통해 흐르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원은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옛친구 철구를 찾아가 함께 술을 마십니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정원은 젊은 시절 철구가 쫓아 다니던 복덕방집 딸 얘기를 꺼내고, 철구는 싱겁게 웃어 넘깁니다. 이제는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다른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린 그에게 복덕방집 딸은 이미 기억 속에서 멀어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복덕방집 딸 이야기는 그 시절 함께한 정원과 철구의 추억을 소환합니다. 엊그제 같던 그 시절은 십년이 흘러 이제 철구는 도장을 운영하는 어엿한 태권도 사범이 됐고, 정원은 아버지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원은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 후 동네를 떠났던 첫사랑 지원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게 됩니다. 정원은 오랜만에 만난 지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원도 정원 또한 변한 것이 없다며 인사합니다. 하지만, 정원의 집에 찾아온 동생 정숙은 지원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정원에게 전하고, 정원에겐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나눴던 인사말과는 달리 긴 시간이 흐른 지금, 많은 것들이 예전 그대로일 수 없습니다. 

 

|  흐르는 시간에도 변하지 않은 사랑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정원에게 다림이 나타납니다. 더운 여름 주차단속에 지친 다림은 정원의 사진관을 찾아온, 사진관을 둘러보며 정원의 나이는 몇 살인지, 별자리는 뭔지, 결혼은 했는지,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서는 다림이 정원은 싫지 않습니다. 

 

다림은 늘 정원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합니다. 친구를 핑계 삼아 정원과 함께 놀이동산에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을 넌지시 건네기도 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섭지도 않은 정원의 이야기에 놀라며 그의 팔을 잡기도합니다. 정원의 마음 역시 다림과 다르지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갑작스레 찾아온 선물같은 사랑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놀이동산에 가고, 학교운동장을 달리고, 하나의 우산을 받쳐들고 나란히 걷는 둘의 모습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연애이지만 정원과 다림에게, 그리고 둘의 사랑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사랑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흘러갑니다. 정원이 갑자기 쓰러지고, 며칠이 지나도 사진관의 문은 닫혀 있습니다. 처음엔 기다렸고, 걱정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알고는 있는지 영문도 모르는 기다림에 화가 난 다림은 사진관 유리창에 돌을 던집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정원은 마지막으로 다림을 찾아가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이제는 괜찮아진 듯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기만 합니다.

 

정원에게 첫사랑의 기억은 사진관에 걸려 있는 사진들처럼 추억이 되었습니다. 다림과의 시간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처럼 기쁘고 설렜던 다림과의 사랑은 그에게 추억이 아닌 사랑 그 자체로 남습니다. 

 

사랑의 아픔이 열병처럼 지나가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사진관 앞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은 눈부시기만 합니이제는 웃는 얼굴 발길을 돌리는 그녀정원과의 짧았던 사랑의 기억은 앞으로 그녀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을 선물할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