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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고,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용감한 일이다.” -임대형 감독-
2019년 개봉한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개봉후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눈덮힌 오타루의 풍경이 영화<러브레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김희애 배우와 일본의 나카무라 유코 배우의 무게감 있는 연기가 작품의 분위기를 더해주는 영화. <윤희에게>를 소개합니다.
감독 : 임대형
배우 : 김희애, 나카무라 유코, 김소혜, 성유빈, 유재명
| 어느날 도착한 한 통의 편지
어느 날 윤희(김희애)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녀의 딸 새봄(김소혜)이 우연히 편지를 먼저 읽게 되고, 늘 어둡고 지친 모습으로 살아온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제서야 새봄은 엄마를 이해해 보고 싶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지친 일상을 보내던 윤희는 새봄이 다시 넣어 놓은 편지를 확인한다. 20여년이 지나도록 잊고 지낸 준(나카무라 유코)으로부터의 편지는 윤희의 마음을 흔들고, 이를 계기로 윤희와 새봄의 여행이 시작된다.
하얀 눈으로 덮인 예쁜 소도시 오타루에 도착한 모녀는 얽혀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새봄은 더욱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그녀의 사랑을 다시 이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 삶의 재생
출근길 아침 통근 차량을 기다리는 윤희의 모습에서 삶의 의욕이나 애착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차창 밖을 내다보는 모습도, 일을 하고 있는 순간도 그렇습니다. 술에 취해 집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전 남편에게도 조금의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모습으로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힘겹게 쏟아내는 그녀에겐 어떠한 삶의 의미나 의욕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녀에게도 새봄과 같은 시절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대상이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가족들은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했고 정신병원에 보내기도 합니다. 그 시절의 상처와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고, 그런 마음을 덮어 놓은 채 떠밀리듯 가족의 강요로 남자를 만났고 새봄을 낳게 됩니다. 그녀는 원치 않았고, 가족들은 원했던 평범한 삶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남편과 헤어진 후 새봄과 함께 살고 있지만 새봄에게도 윤희는 따뜻한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읽고 아빠를 찾아가 엄마와 헤어진 이유를 묻는 새봄에게 아빠(유재명)는 대답합니다. “너희 엄마는 뭐랄까…사람을 외롭게 하는 사람이야…”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세상으로부터 강요당한 삶을 받아들이고 나답게 살아갈 수는 있는걸까요? 그런 윤희의 삶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20여년 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던 준에게서 온 편지입니다.
갑작스레 날아 든 준으로부터의 편지는 그동안 지내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고 지우려했던 그때의 감정을 다시 꺼낼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딸과 함께 도착한 작은 도시 오타루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곳은 윤희가 사는 공간과 달리 그녀의 아픔들을 하얀 눈 속에 묻어버리고, 그녀가 바랬던 모든 것들을 이루어 줄 것만 같습니다.
언제나 입고 다니던 낡은 패딩은 떠나온 곳에 버려두고, 이른 아침 새로 산 코트를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선 윤희.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곤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마침내 준의 집 앞에 도착한 윤희는 때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 준에 놀라 건물 뒤로 숨고. 윤희가 온 것을 느낀 걸까. 준은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다 발길을 옮깁니다. 오랬동안 기다렸던 순간이었지만 준 앞에 서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윤희의 눈물은 멈추지 않습니다. 20여년을 돌아온 것에 대한 후회때문이었을까요. 그동안 간신히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버렸기 때문일까요.
터져 버린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엔 그동안 잊고 지낸 삶에 대한 용기가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답고 보편적인 감정, 사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를 계기로 준은 윤희에게 편지를 쓰지만 부치지 못합니다. 이를 발견한 고모는 그녀를 대신해 편지를 부칩니다. 윤희에게 닿은 편지는 그녀의 딸인 새봄이 먼저 알고 읽게 됩니다. 편지를 읽고 엄마의 비밀을 눈치챈 새봄은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하고, 윤희와 새봄은 준이 살고 있는 오타루에 도착합니다.
20여년을 넘게 떨어져 상실감 속에 살아가는 윤희와 준을 다시 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준의 고모와 윤희의 딸 새봄입니다. 이 둘이 만들어준 우연한 계기는 윤희와 준에게 다시 한번 삶의 희망을 꿈꾸게 합니다. 가부장적인 부모들과 사회로부터 정체성을 강요당하며 받았던 상처는 끝까지 아물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고모와 딸의 노력은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의 희망을 선물합니다.
이제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새봄은 그 시절 윤희가 그랬듯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못한 엄마의 비밀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추운 겨울 같았던 윤희의 시간은 그녀의 딸인 새봄으로 인해 다시 따뜻해질 채비를 하게 됩니다.
눈을 치우며 준의 고모가 한 말처럼 자연 앞에 무력해 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사랑이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눈 덮인 아름다운 오타루를 배경으로 담담함을 잃지 않고 흘러가는 이 영화는 사랑이란 인간의 보편성과 그것을 지켜내기위한 용기에 대해 차분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러브레터’ 속 오타루는 이제 ‘윤희에게’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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