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 <썸머 워즈>(2009)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늑대인간을 사랑한 여대생 '하나'가 '그'를 잃고 씩씩하게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가족과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개봉 후에도 입소문을 통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늑대아이'를 소개합니다.
| 나와 닮은 사람이 남겨준 사랑
대학생인 하나는 강의실에서 우연히 지켜보게 된 그에게 끌려 조심스레 다가선다. '그'도 자신에게 다가온 하나가 좋지만 그녀에게 말해야만 하는 사실이 있다. 자신이 늑대인간이라는 것.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하나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하나에게 중요한 건 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과 많이 닮아 있는 그와 함께 하는 것.
첫째 유키가 태어났을 때 그는 하나에게 ‘아이가 다 클 때까지 함께 지켜 주자’고 말했다. 하지만, 둘째 아메가 태어나고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그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와 아이들 곁을 떠나고 만다.
그가 죽고 하나 곁에는 두 아이만 남았다. 그가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하나는 떠난 그의 사진 앞에서 유키와 아메를 잘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들었지만, 하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두 아이를 평범한 아이들처럼 키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즐겁게 뛰어 노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유키와 아메가 안쓰럽고, 아이들이 아파도 쉽게 병원에 갈 수 없는 현실은 너무도 막막했다.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오랜만에 만난 진실한 사랑의 모습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부모가 자식을 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해하는 짐승같은 현실을 사는 지금. 문득, 하나와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웠고,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기 위해 OTT를 뒤져 <늑대아이>를 찾았습니다. 한번, 두번 볼 때는 두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하나와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대학생인 하나와 ‘그’의 사랑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진실하지만 가난한 사랑은 아름답지만 초라하고, 응원하지만 원치 않으며,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쉽게 깨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요즘 우리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왜 하필 그였냐고. 평범한 인간도 아니고, 가족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사회에서 받아줄 곳 변변치 않은 그를 선택한 이유가 뭐냐고.
그리고 한참을 생각해봤습니다. 아버지마저 떠나고 세상에 혼자였던 하나는 ‘그’ 역시 세상에 혼자라는 것을 첫 눈에 알아봤을 겁니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대로 힘들 때도 웃으며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온 그녀지만 늘 마음 한구석을 파고드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 하나의 마음에 어딘가 자신과 닮아 있는 그가 들어왔습니다. 세상과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놓인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과 분리되어 혼자인 듯한 그에게서 하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혼자라는 동질감은 사랑이 되었고, 그와 미래를 함께 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기꺼이 ‘그’의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말합니다.
하나가 자신을 떠날 것 같아 두려웠던 그는 뒤늦게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하지만 ‘그’를 향한 하나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에 혼자였던 하나에게 그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고 사랑이 되었으니까요. 잠든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의 눈빛엔 그와 함께 하는 나날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걱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다짐이 담겨있습니다.
| ‘나만 믿어. 반드시 잘 키워낼 테니까.’
길가에 핀 꽃을 꺾어다 집을 가꾸고,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순간들은 꿈처럼 빠르게 흘러가고 세찬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던 ‘그’는 죽은 늑대의 모습으로 하나와 아이들 앞에 나타납니다. 내리는 빗속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폐기물 차량에 실려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의 마음은 어떨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함께 아이들을 지켜주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 곁을 떠났지만,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온 몸을 감싸는 두려움을 애써 누르며 용기를 내봅니다. ‘그’가 떠난 세상이 두렵긴 하지만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다시는 혼자서 외롭지 말라고 ‘그’는 하나에게 두 아이를 선물로 남겨두었습니다. 하나는 용기내 다짐하며 떠난 ‘그’에게 말합니다.
‘나만 믿어. 반드시 잘 키워낼 테니까.’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워 나가는 하나의 모습은 무척이나 헌신적입니다. 그것은 분명 아이를 향한 엄마의 모성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직도 지울 수 없는 ‘그’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혼자였던 ‘그’에게 가족을 선물하겠다던 스스로의 다짐이 하나의 마음속에 꺼지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사랑의 모습이 때론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그것 역시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며, 이에 대한 책임과 희생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나와 두 아이는 나에게 말하는 듯합니다.
짧지만 가슴 벅찬 사랑, 엄마와 두 아이의 아름답고 눈부신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내 안에 식어 있던 마음의 온도를 살짝 올려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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