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접속>(1997)의 장윤현 감독 작품이며 1999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한석규와 심은하가 <8월의 크리스마스>이후 다시 만나 호흡을 맞춘 영화로 당시 한국영화에서 드물었던 범죄 스릴러 장르를 완성도 높은 스타일로 연출한 작품입니다. '접속'의 성공 이후 장윤현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고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한석규, 심은하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화재를 모았으며, 그 때까지 볼 수 없었던 세련된 미장센만으로도 그 때까지와는 다른 한국영화의 성장을 느끼게 하는 탁월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 '텔 미 썸딩'을 소개합니다.
|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연쇄살인사건
오래된 오피스텔의 702호로 들어가는 한 남자. 잠시 후 마취된 채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운 그의 사지가 누군가에 의해 잘려나간다.
한 아이가 건물에서 떨어져 시신으로 발견되고 뇌물혐의로 조사를 받던 조민석 형사(한석규)가 사건을 맡는다. 아이의 옷소매 단추 하나가 떨어진 것을 의아해 한 조민석은 남아 있는 단추를 확인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세차게 비가 내리는 밤 토막 난 시체가 실려있는 차량이 발견되고 이후 다른 장소에서도 잇따라 시체들이 발견된다. 시체의 부검결과 범인은 자신이 토막 낸 시체의 일부를 하나씩 수집하고 있음을 알아낸다. 토막 난 시체들과 관련된 인적사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번째 시체와 관련된 사람으로 채수연(심은하)이란 여자를 알게 되고 조민석은 그녀를 찾아가게 된다.
채수연에게 피해자들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과거에 채수연과 연인이었던 사람들로 수연과 주변인물들을 탐문해 가던 조민석은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집착하며 주변을 맴돌던 김기연(유준상)을 강력한 용의자로 체포해 취조하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다.
그사이 수연의 집에 누군가가 침입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수연에게 확인하려 하지만 수연은 대화를 거부한다. 풀려난 김기연은 그의 집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누군가와 통화 후 집을 나선다.
조민석은 병원을 나와 별장에 있던 수연을 안전상의 이유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수연은 조민석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는다.
계속해서 기연을 추적하던 조민석은 기연의 차가 서있는 건물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선다. 의문의 비디오 테잎이 재생되고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수연의 사진이 발견된다. 밖으로 나오는 조민석을 의문의 차량이 덮치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수사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 세련된 영상미가 돋보이는 범죄 스릴러
<텔 미 썸딩>은 개봉 당시 감각적인 영상미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작품의 이야기 구조와 결말의 모호함 등 몇몇 부분때문에 호평과 혹평이 갈리기도 하지만 탁월한 영상미 만큼은 당시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세련된 느와르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는 작품의 분위기와 스토리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려낸 어두운 색조와 채도는 작품의 우울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영화 속 주인공인 채수연의 어둡고 비밀스런 분위기와 이야기 그리고 내면적인 갈등과 혼란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냅니다. 또한,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는 스릴러 장르가 갖는 대표적인 시각적 요소로 극의 긴장감과 불안을 극대화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작품에서 장윤현 감독은 시각적인 상징과 메타포를 이용해 주요한 메시지들을 전달하고 있는데, 영화의 도입부와 중간에 나오는 ‘캄비세스 왕의 심판’과 밀레의 ‘오필리아’, 모자이크처럼 여러 장의 사진으로 완성된 채수연의 사진 등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치입니다.
| 학대와 고립 속에서 분열된 자아
인간은 학대의 고통과 고립 속에서도 온전한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채수연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 의해 성적 학대와 폭력을 당하며 살아온 인물입니다. 폐쇄된 환경 속에서 저항할 힘이 없는 인간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 으로부터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먼저 그 폭력에 순응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엿보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폭력에 순응하는 나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나는 분리되고 양면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자신에게 가해지던 폭력은 사라졌지만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은 수연의 내면에 복수를 위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냅니다. 채수연에게 남자는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와 같이 적대와 혐오의 대상일 것입니다. 극단적 학대와 고립의 상황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한 본능적 선택이 인격을 왜곡시키지만 살아 남기 위해 왜곡되고 분열된 자아는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갈 것 입니다.
치밀하게 계획한 살인의 종착점은 자신이 증오하는 남자들이 아닌 자신에게로 귀결되어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정해진 그곳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은 아닐까요?
개봉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스타일로 주목받았던 이 영화는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새로운 시작을 열어준 작품이며, 이제는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배우 심은하의 연기와 매력,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한석규 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한번쯤 꼭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반응형
'무비&시리즈 캐비닛(Movie cabine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빅:Big] 어른이 된다는 것 (1) | 2023.06.14 |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사랑 (1) | 2023.06.14 |
[히트]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 한편을 원한다면 (0) | 2023.06.13 |
[늑대아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과 성장스토리 (0) | 2023.06.13 |
[더 퍼스트 슬램덩크] 전설은 죽지 않는다 (1) | 2023.06.13 |